설도와 원진의 사랑 Ⅱ

춘망사(春望詞)

불연의 명시를 주고받아

김태봉 기자

작성 2020.05.31 11:16 수정 2020.06.04 14:22

  


<설도>

춘망사( 春望詞)>

花開不同賞 花落不同悲 (화개부동상 화락부동비)

欲問相思處 花開花落時 (욕문상사처 화개화락시)

攬草結同心 將以遺知音 (람초결동심 장이유지음)

春愁正斷絶 春鳥復哀吟 (춘수정단절 춘조부애음)

 

花落日將老 佳期猶渺渺 (화락일장노 가기유묘묘)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불결동심인 공결동심초)

 

那堪花滿枝 飜作兩相思 (나감화만지 번작양상사)

玉箸垂朝鏡 春風知不知 (옥저수조경 춘풍지부지)

 

꽃 피어도 함께 즐 길 이 없고 꽃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묻노니 그대 어디에 계시는가 꽃 피고 꽃 지는 이 계절에

풀을 따서 한마음으로 맺어 날 알아주시는 임에게 보내어

봄 시름 그렇게 끊으려 하는데 봄 새가 다시 슬피우네

 

꽃잎은 바람에 시들어가고 만날날은 아득히 멀어져 가네

마음과 마음을 맺지 못하고 헛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어찌 견디리 꽃 가득한 나무가지 바람에 날려 그리움으로 변하네

옥같은 눈물 아침 거울에 떨어지는데 봄 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원진>

 

원앙초(鴛鴦草)

 

綠英滿香砦 兩兩鴛鴦小 (녹영만향채 양양원앙소)

但娛春日長 不管秋風早 (단오춘일장 불간추풍사 )

 

싱그러운 꽃봉오리 향기로운 섬돌에 가득하고,둘씩 둘씩 어울린 어린 원앙이어라

오직 긴 봄을 즐거워 할 뿐이니, 가을 바람이야 무에 걱정 할 것 있으리

 

<元鎭>

 

錦江滑賦娥眉秀 幻出文君與薛濤 (금강활부아미수 환출문군여설도)

言語巧愉鸚鵡舌 文章分得鳳皇毛 (언어교유앵무설 문장분득봉황모)

 

紛紛辭客多停筆 個個分卿欲夢刀 (분분사객다정필 개개분경욕몽도)

別後相思隔煙水 菖蒲花發五雲高 (별후상사격연수 창포화발오운고 )

 

금강의 매끄러움과 아미산의 빼어남이 변하여 탁문군과 설도가 되었구나

말씨는 앵무새의 혀와 같고 문장은 봉황의 깃털같이 화려하네

 

詩人들 부끄러워 붓을 멈춤이 많고 공경 대부들 꿈속에서라도 그대와 같은 시를 쓰고 싶어하네

 

헤어져 그리운데 아득한 강 저편이라 창포꽃 피고 오색 구름 높구나

 

 

< 薛濤>

 

유서(柳絮)/

 

二月楊花輕復微 春風搖蕩惹人依 (이월양화경복미 춘풍요탕야인의)

他家本是無情物 一向南飛又北飛 (타가본시무정물 일향남비우북비)

 

이월의 버들 강아지 가볍고도 작아 봄바람에 하늘 거리며 옷깃을 스치네

버들 강아지야 무정한 꽃잎이지만 남쪽으로 날리고 또 북으로도 날리네

 

 

<元鎭>

 

離思( 리사)

 

曾經滄海難爲水 除却巫山不是雲 (증경창해난위수 제각무산불시운 )

取次花叢懶回顧 半緣修道半緣君 (취차화총라회고 반연수도반연군 )

창해를 보고나선 세상의 강이다 대수롭지 않고

무산을 보고나면 다른 것은 구름이라 할 것이 없네

 

아름다운 꽃을 봐도 즐겁지 않은 것은

반은 수도 때문이고 반은 님을 그리기 때문이라오

 

39세의 정상을 달리던 이름난 시인이요 명기였는데 12살 연하의 불운한 천재 연인 원진을 만나 주고 받은 애틋한 사연이 시로 얽혀있다.

 

후에 원진과 설도는 성도에서 만났는데, 그위()씨녀가 원진을 사랑하여 그 벼루를 잡고 가는 것을 막았고 급기야 벼루를 시냇물에 빠뜨려 버리고 말았다. 설도는 자신의 한계를 느꼈고, 원씨 문중과 부딪칠 수 없음을 알았으며, 또 위씨가 원진을 따르려 하는 마음을 느끼게 되어 드디어 사랑이 깨어지는 아픔을 감수하게 되었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 해도, 두 사람은 설도의 조건 때문에 맺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선 설도는 악기(樂妓)였고, 원진보다 10년 정도 연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천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명문 출신은 아니었고, 설도의 나이는 이미 청춘을 벗어나고 있었다. 40세나 되어서야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설도였다. 하지만 이미 그것은 떨어진 꽃의 심사(心思)였고, 그녀에게 오로지 정을 바칠 수 없는 원진은 흘러가는 바람이었다.

 

사람은 찾았으나 영원히 마음을 엮을 수 있는 '동심인(同心人)'이 되지는 못한 것이었다. 설도는 비록 원진과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죽을 때까지 그를 사랑했다. 설도는 성도(成都)의 완화계(浣花溪)라 불리는 시냇가에 살았다. 집이 창포(菖蒲) 꽃으로 가득했고, 설도는 대나무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성도에는 현재 설도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망강루(望江樓)공원이 있는데 약 130 종 이상의 대나무가 있다고 한다.

설도는 만년에는 완화계에서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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