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감귤의 유래

귀한 과일

고려 시대부터 귀한 과일로 취급되던 제주감귤

진상,제례에만 사용할 만큼 귀하게 여겨

김태봉 기자

작성 2020.03.21 16:31 수정 2020.03.26 16:06

 


1448년 봄 휴식을 위해 정자 희우정을 방문한 임금 세종과 집현전 문인들이 모인 자리에 동행한 동궁 문종은 신하들에게 접시에 진귀한 과일을 하사한다.

과일이 모두 없어지자 모습을 드러낸 문종의 짧은 시

 

향나무는 코에만 향긋하고

기름진 고기는 입에만 맛있네

동정귤(洞庭橘)을 가장 사랑하나니

코에도 향긋하고 입에도 달기 때문이지.

-문종. 귤시 욜성어제’-

 

*동정귤: 감귤품종의 이름.

 

원산지 :인도 북동부 아삼, 중국 남부 운남성.

국내 유입은 삼국시대 초기로 추정.

 

탐라에서 매년 진상하는 귤의 수량을 일백 포로 늘리도록 고쳐 정한다.

-‘고려사’ 1052(문종6) 3-

 

고려 이전부터 해마다 나라에 바쳐지던 제주의 특산물 감귤

감귤은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빈객을 접대하므로 그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

- ‘조선왕조실록’ 1455(세조1)1225-

 

귤껍질은 횡격막에 뭉친 기를 치료하고 가래침을 삭히며 구역질을 멎게하고,대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

.-‘동의보감

 

제주에서만 생산되고 그 쓸모가 귀해 왕족,관리들만 먹을 수 있었던 감귤이었다. 때문에 감귤의 재배는 조정에서 엄격하게 관리했다.

제주 목사 이수동이 1526년 귤의 도난을 막고 재배를 권장하기위해 다섯 방호소에 과원을 설치하고 군사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제주의 감귤나무는 매년 심고 접붙이며.,해마다 그 수를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경국대전’-

 

그리고 매년 감귤이 진상되는 시기.

성균관과 사학(四學)유생을 대상으로 열린 특별한 과거 시험, 황감제(黃柑製).

일반과거와 달리 1명만을 선발하며 단 1차례로 관직이 주어지는 특급 이벤트로 참여 유생들에게 귤을 나누어주며, 귀한 과일의 진상을 축하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조정에서 귀하게 여길 수 록 더욱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 제주 농민들이었다.

1653년 제주 과원의 진상 총 물량을 정했던 탐라지에는,

생과용 귤 86,053

약재용 귤껍질 11610량 이었다.

공물로 바쳐야 할 감귤의 수량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과원만으로 충당하기 어려웠고, 때문에 관리들은 일반 민가의 귤나무에까지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해마다 7,8월이면 목사는 민가를 순찰하며 귤의 열매를 하나씩 표시하여 장부에 적어두었다가, 귤이 익을 때면 장부의 수대로 바치게하고, 그 수량을 채우지 못하면 백성에게 배상하도록했다.

-김상헌 남사록’-

 

이 때문에 백성들은 나무 심기를 즐겨하지않았고, 심지어는 나무를 뽑아버리기까지 했다.

-‘조선왕조실록’ 1455(세조1) 1225-

그러자 나무를 없앴다며 관에서 가해지는 형벌이 시작되었다.

계속되는 횡포에서 벗어나기위해, 농민들은 나무에 끓는 물을 부어 죽이는 방법까지 고안하게되었다. 조정에는 기쁨이 백성에게는 독약과도 같았던 감귤 진상제도는 1894(고종31) 갑오개혁으로 공물제도가 폐지되면서 사라지고, 1960년 초기부터 재배지가 확장, 1970년대에 들어와 지금의 대량소비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탐라순력도 ‘감귤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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